CEO조찬 시즌1 후기

기고글 2015. 10. 7. 09:42

직장생활을 왜 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먹고 사는 문제라 답하고 싶습니다.
예전이야 설마 입에 풀칠 못 하겠냐 싶었지만, 조직이라는 틀 안에서 10년 넘게 지내고 보니
이제는 바깥이 무섭고 회사가 외부와 나를 차단시켜주는 보호막 정도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CEO조찬 식샤를 합시다시즌 1입니다.

요즘은 먹방이 대세지만 함께 먹자는 회사 먹활(먹는 활동)의 시작은 ‘13밥 한번 먹자입니다.
팀간 식사였는데 이를 기반으로, 14년에는 사장님이 직원들과 자연스러운 소통을 위한 아침식사를 생각했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처음 계획으로는 대충 1년이면 전 구성원 식사를 한번씩 다 할 수 있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했지만,
누구 하나 대화에서 빠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을 잡다 보니 한번에 6명을 넘을 수 없었고, 누구 하나 빼지 않고 진행하려다 보니 1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CEO조찬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의문부호들이 참 많았습니다.

사장님과 식사하는 자리가 많이 불편하진 않을까?
바쁘신 사장님이 조찬을 꾸준히 진행하시는 의지가 지속되실까?

이외에도 주변의 독려와 저 자신의 걱정이 혼재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1달은 입을 꼭 다물고 앉아있는 직원들과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신 사장님 덕분에
그 의문부호가 더 커지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익숙함을 이기는 긴장감은 없다지요.
사장님이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타시기 시작하자 점차 아침조찬 분위기도 좋아졌고,
매주 지내다 보니 없는 주간은 목요일 아침이 좀 심심하다는 생각도 간혹 들었습니다.

그렇게 52회가 지나고, 김해와 몇몇 신규입사자 분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들과 함께 하면서 정말 감사했던 점이 있습니다.

많이 바쁘고 피곤하신 와중에도 빠짐없이 아침식사에 차분하게 참석해주신 우리 직원들의 모습입니다.
사장님과 식사하는 것이 그리 편안치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휴가 중에 잠깐 아침에 나오셔서 식사하시고 휴가가시는 분들까지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사장님과 식사하는 것을 딱딱하게 생각하지 않고 차분하고 편안한 모습임을 발견하면서,
사장님과 구성원의 유대가 일반적인 사장과 직원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진행하는 동안 받았습니다.

몇몇 직원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고,
다른 몇몇 직원들은 회사가 발전하기 위해 어떠한 방향을 가지면 좋겠느냐?’ 라는
사장님의 질문에 소신껏 답하는 모습들도 많았습니다.

놀라웠던 점은,
개인 고민을 털어놓은 직원들은 사장님의 대답을 인생 선배의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있었고,
회사나 업무 고민에 대해서는 각자가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보통 다른 채널을 통해 임원이나 상사들에게 불편사항을 제기한다는 느낌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사장님 앞이라 그런 점도 있겠지만, 일시적인 불편이 있지만 어떤 점은 개선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던가, 더 바뀌었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을 제시할 때는 전사적인 관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직원들이 모든 의도를 이야기하지는 않았겠지만, 스스로 정제하고 객관적인 시각 안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은 사장님과 구성원간의 건강한 의견 나눔을 이끌어내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쉽지 않은 일정이지만, 긴 시간 동안 불평 한 마디 없이 흔쾌히 조찬을 이끌어주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오히려 직원들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모습은 여느 사장님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라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에빙하우스 망각곡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공부를 한다고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학습 후 1시간이 지나면 그 때부터 망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배운 내용의 70%를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어렸을 적 친한 친구들은 언제나 친할 것 같지만, 삶의 궤적이 다르고 생활이 다르면 어느 순간 소원해지고 잊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하고 요즘은 메신저나 SNS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고 그 자리에 언제나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지난 시즌 1이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는 자리였다면,
다음 번에는 그 마음을 확인하고 마음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마음 밭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는 우리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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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찾아오는 한가위는 풍성함이 더할 나위 없는 때이다.

때가 되면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고향을 찾아, 가족과 정을 나눴다.

헌데 요즘은 명절 풍경이 많이 변했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역 귀성하는 부모님들이 계시고,

명절 연휴 동안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변한 명절의 모습은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알려주는 단상이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직장에서도 나타난다.

 

세대의 압축성장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경영진은 50세를 기준으로 본다면 30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셨다.

신입사원을 30세 기준으로 보면, 삼촌과 조카, 과장하면 아버지와 자식 정도의 차이다.

아버지는 80년대 학번 산업역군 세대이다. 그리고 품 안에서 자란 사원은 30살로 일반화 하면,

직장과 가정은 다른 세대가 생활하는 동일한 공간의 두 축이다.

 

그런 아버지와 자식 관계는 집과 직장이라는 두 조직에서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자식들을 아낀다. 누가 해코지라도 할라 치면 분연히 대응할 자세가 충만하다. 잘못한 일이 있어도 안으로 굽는 팔처럼 자식 편에 서려는 태도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자식뻘 되는 사원들을 보면 철없고 생각 없는 행동에 분개하기도 한다.

동일 세대를 바라보는 입장이 소속집단에 따라 상반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젊은 사원들은 나름 논리적인 면을 가지고 있지만 수동적이다.

선행학습하며 공부해 대학 나와 사회가 지시하는 방향대로 입사했기 때문에,

당연히 입사 후에도 시키는 대로만 하면 문제없이 나의 영특함을 알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르쳐 주지 않고 일을 잘 하길 바라는 비논리적인 태도에 비판하기 일쑤다.

현대 사회에 적합하게 자란 형태라고 본다.

 

하지만, 20세기 성인들은 생각이 다르다. 서류 복사를 시키면 내용을 읽어보며 스스로 역량을 키우길 바라고, 선배보다 일찍 출근, 늦게 퇴근하는 유학적인 태도를 바라며, 상사를 존경하기를 바라고 있다.

 

가정과 직장의 변화

직장에서 이러한 압축된 세대간의 격차는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쉽게 봉합된다.

이유는 전통적인 의미의 중재자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는 언제나 희생적인 구성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들을 일축해 버릴 수 있었다.

전통적인 가정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가정과 직장이 모두 변하고 있다.

직장에서 가정처럼 희생적인 역할을 도맡아 해줄 만한 구성원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가정에도 전통적인 관점의 희생은 어불성설이다.

가정의 해체와 역할이 변하고 있는 마당에 직장 관리자에게 희생적인 모형을 원하는 것은 문제다.

그 동안 우리의 직장은 특유의 군대문화와 유교적인 관념이 지배했지만, 이제는 그런 전통적인 모습에서 빠르게 탈피하고 있다.

 

관리자들은 더 이상 조직 기반으로 희생하지 않는다. 조직관리보다는 기능전문가의 역할이 더 강해지는 추세이다. 수평화된 조직은 세대간의 완충장치 없이 직접적인 소통을 원하고 있다.

 

직장도 언제까지나 지금의 조직구조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개봉하는 영화처럼 60세의 신입사원이 입사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30대의 중간관리자와 협업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소통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

이런 사회가 도래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소통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문학평론가 고영직 선생은 꼰대의 반대말을 꽃대라 했다.

꼰대는 여전히 강하지만, 꽃대는 힘이 없이도 아름답다 적었다.

우리는 여전히 꼰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아름다움을 피울 수 있는 꽃대가 될 수 있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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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선택

생각글 2015. 7. 13. 13:11

한 정치인이 선거운동 슬로건으로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 하마평에 오른지 3년이 지났다.

기업들은 저성장 기조 때문에 기업문화가 아니라 기업군기를 강조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쥐어짜기 문화가 대한민국을 강타하는 요즘, 반대편의 화두는 "일과 삶의 균형"이다.

현대차그룹와 포스코가 실적부진과 위험인식의 타개책으로 
기업군기를 강조하며, 주말근무 및 야근에 대한 강도높은 독려를 시작한 지금
소위 영감님들이라 불리우는 기업의 총수나 CEO들은

늘 접하는 신문이나 언론매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판단력을 휩쓸리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국제정세와 우리의 정치권력이 모두 우향우하며, 군기를 다 잡는 문화에서
기업의 권력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트랜드가 우리나라 보수권력의 트랜드로 쏠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90년대 호황기를 끝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 우리 경제에서
호황기 현장을 누볐던 현재의 권력들은 이제 본전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현장에 있을 때는 그렇게 버릇없고 불성실하지 않았는데
오래 살다 보니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본다는 심정으로 소위 아랫 것들 정신무장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실리콘벨리로 다시 세계기업의 정상으로 우뚝 선 미국의 형국을 보자.
그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자유로운 기업문화를 기반으로 진정한 창의가 조직 안에서 어떻게
꽃피울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우리의 기업권력들은 현상을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자체를 해석하고 심지어는 왜곡하기 일쑤다.

실리콘벨리가 직원들의 복지와 근무환경에 투자하는 이유는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도 놀지 말고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예전에 일에만 집중하고 회사에 몸 바쳤으니 너희도 그래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도다.

이 말은 상황에서 따라서 맞기도 하지만 또한 틀리기도 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논리 앞에서 서기 딱 좋은 이야기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분명히 정해져 있는 단계의 길이다.

지금의 우리는 기업에서 해줄 만큼 해준다는 논리가 강하다.
그 이유의 기저는 분명 고용시장의 수급불균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고용시장에 고급인력들이 난무하기 시작하면서
기업은 눈이 높아졌고, 성장에도 재동이 걸림에 따라 더 이상은 직원들에게 뭘 해줄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기업에서 미국 실리콘벨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해석중심으로 변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자본주의의 본산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중심에 실리콘벨리가 있다.
이들은 우리 기업에서 좋은 기회와 문화를 제공할테니 와서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달라는 이야기를 한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다.
실리콘벨리가 초창기 투자를 받는 것처럼 기업은 좋은 인재들을 채용하고 투자해 성과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또한 떠나는 데 미련이 없다. 
해고의 경우를 제외하면 기업과 직원이 우리처럼 종속의 관계로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문화에서는 아직 힘들 수 있는 정황이다.
우리 기업의식은 과거 일본식 기업의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종교문화와 군대문화 사잇길을 걸었고, 희생을 통한 성장과 성공을 기약했다. 접근방식이 다른 것이다.

이런 인식에 있다보니, 우리의 기업문화는 우리의 정치문화와 다르지 않다.
권력지향적이고, 공동체주의가 강하다. 다양성이라는 포장이 있어도 괴짜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정치권력이 유지하는 방식이 젊은이들에게 정치혐오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라는 말이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라는 관점이 우리를 과거 속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변화의 시대라고 말씀들 하지만, 정착 문화적 사고는 더 보수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즘은 기업문화가 기업의 성패를 가른다는 미국식 사고가 우리 경영학계와 기업에 이식되는 중이다.
인구 노령화와 발맞춰 이런 사고는 일과 삶의 균형,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이를 우리 권력은 복지포퓰리즘으로 해석했다.

철없는 것들의 논리라 말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이러한 논리는 성장을 멈춘 우리 대기업을 대체할 새로운 기업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새로운 기업은 도처에 생겨나고 있다. 굳이 벤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젊은 창업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다른 것을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동지들을 찾고 있다.
지금 시장에는 젊은 인재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대기업병을 걷어차는 순간이
우리 기업이 변모하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사실 그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최우선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일과 삶의 선택을 우선시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아의 성찰과 성공을 이루어 갈 것이다.

그 것이 우리 대기업이 강요하는 위기인식과 조직몰입을 대체할 진정한 성찰과 성공의 길이 될 것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임시직원들의 논리를 벗어나는 장기적인 비전은 그런 곳에서 나올 것이다.

본전생각이 기업문화를 망칠 것이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그 본전생각이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내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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