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비전 달성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그 동안 숨어 있던 우리만의 조직문화를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좋은 문화는 활성화하고, 좋지 않은 관행은 고쳐가는 작업들을
고민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부터 한 가지 애매한 내용에 봉착했답니다.
그 이슈의 내용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임직원 간 호칭" 문제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임직원 호칭에서 파생되는 기업문화 이슈를 다루고자 합니다.

1. 나는 회사에 형제와 친구가 있답니다.

지난 주말에 영화 "신세계"를 봤습니다.
거기서 계파 1인자인 황정민(정청)이 이정재(이자성)을 항상 "어이~ 부라더"라고 부릅니다.
저도 일요일에 제 여동생 내외를 만나 재미삼아 "어이~ 부라더"라고 부르니,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하더라구요.

회사에서도 살펴보면, 굳이 "부라더"까지는 안 가더라도
사석 뿐 아니라, 회사 복도나 로비에서 "형, 동생"이나 "누구야~"라는 친근한 호칭을
어렵지 않게 듣게 됩니다.

이런 호칭을 반기시는 분들은 이런 호칭은 조직몰입과 팀워크 개선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좋아라 하십니다.

반면, 반대의 입장에서는 왜곡된 조직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경우는 업무를 하는 와중에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도 사고 사도 사고, 좋은게 좋은 것이 되는 문화가 된다는 걱정이지요.

회사의 규정과 규범이 무너지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결과와 이익 중심의 문화로
빠질 수 있다는 걱정입니다.

2. 말에는 휘발성이 있습니까?

어찌 되었건 친근한 호칭은 기분 좋은 상황이라면 어떤 사람이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안 좋은 상황이라면, 친근한 호칭과 편한 말은 서로에게 독이 되고 상처를 줍니다.
팀장은 팀원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친하다는 핑계로 말로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심한 경우는 인격적인 모독까지 관행화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말은 글과 달리 휘발성이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사실 말이 휘발성이 있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글은 종이에 남아있지만, 말은 누군가의 가슴과 머리 속에 남아 있지요.
그래서 적은 과정에서 여과의 기능을 거치는 글보다는 입을 통해 여과없이 내뱉어지는 말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3. 자리가 사람을 만듭니다.

흔히 하시는 말씀 중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죠.
자리라는 게 사실 별거 아닌 것일 수 있지만, 그 조직을 움직이는 힘이자 
보이지 않은 동기부여의 원천입니다.

저도 대리나 과장 달고는 이메일 꼬릿말이나 서명에 꼭! 대리 혹은 과장이라는 직급을 넣고
심지어는 이메일 첫 머리에 뭐시기 과장이나 대리라고 자신의 직급을 꼭 붙여서 소개하곤 했습니다. 

되새겨보면 참 유치하고 웃기는 노릇인데 어찌나 하고 싶던지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누가 전화해서 직급 틀리게 부리면 쫌 짜증나게 전화응대하고 그랬답니다.

우석훈 교수의 책을 보니 대한민국 기업이 군대문화와 종교문화로 버무려졌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뿌리깊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더 이상 연공서열식에서 벗어난 성과중심의 기업에서는 웃지 못할 광경도 있습니다.

팀 내에서 직장 후배가 먼저 차장을 달거나, 팀장이 되면
같은 팀 내 선배사원들이 팀워크를 저해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협업에도 부정적이고, 태업을 하기도 하며, 팀 후배사원들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팀 회의에서도 목석과 같은 자세를 고수하시지요. 낮 뜨거운 상황도 간혹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팀장된 후배는 살이 쪽쪽 빠지고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패이기 일쑤입니다.

공과 사가 섞이는 조직문화에서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팀장님들이 팀원평가를 연공서열대로 주시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집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데, 그리고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데
중책을 맡은 사람을 돕지 못하고 곱지 못한 시선을 보는 사회가 되는거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친근한 문화가 불러오는 악영향은 그 골이 더 깊죠. 

그래서 우리에겐 공식적으로는 분명히 형과 아우보다는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팀장과 팀 리더에 대한 대우와 호칭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4. 우리의 문화는 우리가 만들어갑니다.

평균 연령이 젊은 기업은 직급을 없애고 직책을 중심으로 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연세 지긋하신 선배사원이나 차,부장급 이상들은 근본도 없는 것들이라 치부하시지만
사회는 분명히 변하고 있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아래서 올라오고 있는 젊은 구성원들이 있습니다.

경험치 높은 회사 내 선배 사원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문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그들의 암묵지는 우리가 쉽게 올라갈 수 없는 영역임에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움직이는 팀장과 팀 리더 중심의 문화가 아니고, 
선후배 간의 형, 동생 호칭을 선호하는 문화로 조직을 이끈다면
회사의 공식적인 소통을 활성화 하는 문화가 아닌 5공시절 '하나회'나 드라마 '아이리스'처럼
마음맞는 연공중심의 사모임이 조직의 의견을 지배하는 기업문화가 될 것입니다. 

좋은 기업문화는 
구조와 규범을 기반으로 소통이 활성화된 문화이지,
그저 형, 동생의 우애가 좋은 문화는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영화 "신세계"에서 그들이 말하는 회사나 다를 바가 없겠죠.

이미 연차가 쌓이신 분들은 혹시 회사생활에서 본전생각하시고 계십니까?
아직 연차가 미천하다는 핑계로 자기 의견이나 고민 없이 주는 업무만 처리하고 계십니까?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말하면서
본인의 업무는 변화와 전혀 상관없는 관성으로 일관하고 있으시진 않으신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게 좋은 형과 동생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팀워크입니다.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존중하는 조직문화랍니다.

합리적인 소통과 존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조직계층에 맞춘 구성원간의 호칭입니다.
또한 호칭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 하시는 것입니다.

자리에 걸맞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김춘수의 시 "꽃"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리를 누리는 관점의 호칭이 아닌, 개인에게 주어진 책무로서의 호칭을 위해 
회사에서는 공식적인 호칭을 사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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